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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공(휘 秉鈞)의 셋째 사위 <1>
조회 : 272 (2018-11-11 23:26:51) 이름 : 박승모

알림: 아래 글은 다음 카페(http://cafe.daum.net/bnp-people)에서 원필자(原筆者)의 동의를 받고 옮겨와 약간 편집한 것임. 논의의 편의상 존칭을 생략함.

무단 복사ㆍ절취를 금함.

  

判官公(諱秉鈞)의 셋째 사위 오익사(吳益師)가 함평오씨(咸平吳氏) 11世 오수해(吳壽海)일까???

 

潘南朴氏宗報45(2018 가을호)에 게재된 호군공후 성우 종인의 기행문 호군공 3자 진사공(諱 輔) 시제 참사기47쪽 위 오른쪽 사진 밑에

 

진사 오수해와 부인 나주박씨의 묘: 진사 오수해의 부인 반남박씨는 진사공 박보와 사촌 남매지간으로 오수해는 판관공 휘 병균의 사위(오익사에서 오수해로 개명)

 

이라는 설명이 보인다.

 

또한 반남박씨 호군공파(8세 호군공 휘 秉中) 다음 카페(http://cafe.daum.net/hokunga)의 글 중에

 

진사공의 중부(仲父) 판관공 박병균(朴秉鈞)의 사위인 진사 오수해(吳壽海: 초명이 오익사吳益師이며, 오영노의 아버지이다)

오수해의 아들 오영로(吳齡老)는 반남박씨 10세 생원공 휘 찬()의 장인

 

과 같은 내용도 보인다. 위에서 언급된 생원공 박찬(朴儧)은 호군공 박병중의 셋째 아드님이신 진사공 박보(朴輔)의 외아드님으로 판관공 박병균의 종손자(從孫子)가 되신다.

 

그런데 반남박씨 8세 판관공(휘 병균秉鈞) 후손들은 위의 글을 대하면서 아마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판관공의 셋째 사위가 吳壽海라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반남박씨 세보인 임오보(1642)부터 8차 세보 임진보(2012)에 이르기까지 판관공의 셋째 사위는 吳壽海가 아니라 吳益師로 표기되어 왔다. 吳益師라는 이름은 소고공(嘯皐公) 휘 승임(承任: 1517~1586)께서 지으신 판관공 묘갈(1579)에도 內禁(내금) 吳益師로 나와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기 족보의 전범(典範)으로 잘 알려진 문화류씨 가정보(嘉靖譜: 1565)에도 吳益師로 표기되어 있다. 반남박씨 임오보와 문화류씨 가정보에는 吳益師의 외아들 오경순(吳敬順)은 물론, 사위 둘과 손자녀들도 함께 등재되어 있다. 다만, 판관공 묘갈을 비롯하여 반남박씨 세보문화류씨 가정보에는 吳益師-吳敬順의 본관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성우 종인과 호군공 카페 글에서 판관공의 사위는 吳壽海이고 외손자(오수해의 아들)吳齡老라고 하는데, 반남박씨 세보와 문화류씨 가정보에는 판관공의 사위는 吳益師이고 외손자(오익사의 아들)吳敬順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대체 어느 쪽 기록을 따라야 할 것인가?

 

성우 종인과 호군공 카페 글에서 판관공의 셋째 사위가 吳壽海라고 단정한 근거가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아마도 함평오씨세보(咸平吳氏世譜)(1822: 吳鳳淳)의 기록을 참고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고공의 판관공 묘갈(1579), 반남박씨 임오보(1642), 문화류씨 가정보(1565)의 기록을 모두 잘못으로 돌리고, 함평오씨세보(1822)의 기록을 따라야 할까?

 

여기서 함평오씨세보에 올라 있는 11世 吳壽海 관련 기록(방주)을 살펴보자.

 

初諱益師 進士 止郡守配淑夫人羅州朴氏 生員義玉女繼配錦山郭氏修義副尉敷女. . .(처음 이름은 益師였으며 진사로 벼슬은 군수에 이르렀다. 처음 부인은 숙부인 羅州朴氏生員朴義玉의 따님이다. 둘째 부인은 금산곽씨로 수의부위인 곽부의 따님이다. . . .)

 

함평오씨 세보에서 11() 吳壽海의 초명을 益師라고 하여 언뜻 판단하기에는 판관공의 셋째 사위 吳益師가 바로 함평오씨 세보의 吳壽海와 동일 인물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또한 함평오씨 세보에 의하면, 吳壽海1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오영로(吳齡老)이고, 세 딸은 각각 오경순(吳敬順), 지구수(池龜壽), 진극번(陳克蕃)과 혼인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함평오씨 세보의 기록은 반남박씨 임오보 및 문화류씨 가정보의 기록과 대조적이다. 임오보와 가정보에 의하면, 판관공의 사위 吳益師1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吳敬順이고, 두 딸은 각각 池龜壽, 陳克蕃에게 시집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자의 기록을 대조해 보면, 임오보와 가정보에서 吳壽海(또는 吳益師)의 사위 吳敬順을 아들로 착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와 같이 양쪽의 기록을 대조해 보았을 때, 소고공의 판관공 묘갈, 반남박씨 임오보 및 문화류씨 가정보의 기록은 잘못된 것이고 함평오씨 세보의 기록이 올바른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과연 그렇게 결론을 내려야 할까?

<2>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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