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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공(휘 秉鈞)의 셋째 사위 <2>
조회 : 315 (2018-11-11 23:35:40) 이름 : 박승모

알림: 아래 글은 다음 카페(http://cafe.daum.net/bnp-people)에서 원필자(原筆者)의 동의를 받고 옮겨와 약간 편집한 것임. 논의의 편의상 존칭을 생략함.

무단 복사ㆍ절취를 금함.

<1>에서 계속:

잠간!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음 몇 가지 사실을 곰곰이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먼저, 함평오씨 세보의 방주에 의하면, 오수해는 進士로 벼슬이 郡守에 이르렀으며 부인이 둘이었는데 첫째가 羅州朴氏朴義玉의 따님이라고 한다. 이는 소고공의 판관공 묘갈을 비롯하여 반남박씨 임오보와 문화류씨 가정보의 기록과 전혀 다르다. 판관공 朴秉鈞의 셋째 사위 吳益師內禁, 司直으로 무관이었다. 실제로, 성종 5(1474) 82일 실록기사에 활쏘기에 능한 무신(武臣) 吳益師가 등장하는데 판관공의 사위 오익사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오수해의 부인이 나주박씨 朴義玉의 따님이라고 하는데, 판관공의 휘가 義玉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금시초문이다. 반남박씨 8세 판관공께서 자 외에 다른 휘자(예를 들면, )를 쓴 일이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함평오씨세보에서 吳益師와 같은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吳壽海의 연산 2(1496) 생원진사방에 보면(권벌 종가 전적, 한국학중앙연구원), 吳壽海는 자()長潤이고 全州에 거주하였으며 부친은 保功將軍行副司直 益時로 기록되어 있다. 본관 표시는 없다. 그런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에 의하면, 300여 년 뒤에 나온 함평오씨 세보(1822)를 근거로 하여 오수해의 본관을 咸平으로 보충하고, 부친의 이름 吳益時吳敬民으로 수정하였다. 또 오수해의 초명 오익사를 추가하고, 부인에 관한 정보도 추가해 놓았다.

 

사마방목에 이미 吳壽海라고 되어 있으니 吳壽海의 초명이 吳益師였다는 것은 사마시 합격 이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시에 합격한 후에는 오익사가 아닌 吳壽海라는 이름을 썼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오수해가 세상을 떠난 후에 작성된 판관공 묘갈명을 비롯하여 반남박씨 세보와 문화류씨 가정보에 한결같이 吳壽海가 아닌 吳益師로 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음으로, 성종 11(1480) 사마방목(세촌선생실기)에 올라 있는 吳齡老에 대한 기록은 자()가 달존(達尊)이고 全州에 거주하였으며 부친은 정략장군(定略將軍) 益師로 기록되어 있으며 본관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설명에 의하면 여기서도 역시 300여 년 뒤의 함평오씨 세보(1822)를 근거로 吳齡老의 본관을 보충하고, 부친의 이름을 吳壽海로 수정하였으며, 부인에 대한 정보도 보충하였다고 한다. 즉 함평오씨 세보(1822)를 기준으로 하여 吳齡老吳壽海의 아들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吳益師武臣이었음은 吳齡老의 사마방목에 부친 吳益師定略將軍으로 기록된 것으로 확인되는 듯하다.

 

여기서 또 하나 어색한 것은, 함평오씨 세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하는 두 인물(吳壽海吳齡老)의 사마시(司馬試) 합격 연도이다. 한국학중앙연구소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마방목을 보면, 아버지라고 하는 吳壽海는 연산 2(홍치 9: 1496) 병진 윤3월 초삼일에 실시된 시험에 입격하였는데, 아들이 된다는 吳齡老는 아버지라는 吳壽海보다 16년 먼저, 즉 성종 11(성화 16: 1480) 경자 3월 초삼일에 실시된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이런 일이 과연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도 곰곰이 살펴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띈다. 문화류씨 가정보와 반남박씨 세보에 吳益師의 아들로 등재된 吳敬順과 함평오씨세보에 吳壽海의 사위로 등재된 吳敬順이 공교롭게도 이름자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함평오씨세보에 나오는 오수해의 사위 吳敬順은 보성오씨(寶城吳氏)로 표시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어느 한 쪽의 착오일 수 있다. 문화류씨 가정보와 반남박씨 임오보의 착오일 수도 있고, 함평오씨 세보(1822)의 착오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양쪽 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반남박씨 세보의 吳益師와 함평오씨 세보의 吳壽海는 동일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의 하나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판관공(휘 병균)의 셋째 사위 吳益師는 함평오씨가 아니라 寶城吳氏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오익사가 보성오씨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람.)

 

결론적으로, 함평오씨 세보에 나오는 吳壽海가 반남박씨 8세 판관공 휘 병균의 사위 吳益師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반남박씨 종인들, 특히 판관공 후손들의 세밀한 관찰과 경각심을 촉구하며 두서없이 졸고를 마친다.

 

追記: 潘南朴氏宗報45호 성우 종인의 글 46쪽에 나오는 도표 중, 판관공의 1오의 부인(金珸)의 부인으로, 2김진의 부인김진(金進孝)의 부인으로 수정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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